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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정치적 올바름 데리다는 지젝을 통해 말한다. 올바른 이념의 그 '올바른'이라는 정의 상태가 환원될 수 없는 것임을. 그건 결국 실현되지 않는 모순임을. 메워지지 않는 틈새임을. 그럼으로써 사르트르 식의 인간적 마르크시즘의 엉뚱한 비겁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 어떤 날 지젝의 책을 읽다가 더보기
헤겔 변증법 올바른 이념과 왜곡된 실현의 틈을 메우는 과정이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인가? 헤겔, [법철학 강요] 서문을 읽다가 더보기
대장경이라는 물건 대장경은 송나라의 인쇄술 발전이 없었으면 나오지 않을 물건이고, 더군다나 중국의 "중앙집권제"가 있지 않으면 또한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중국의 왕조사가 아니면 더더군다나 생기지 않았을 저작물이다. 더보기
과학의 종교성, <라마찬드란의 두뇌실험실 [Phantoms in the Brain]>에서 과학은 마치 종교처럼 인간의 존재를 재규정합니다. 어떤 거대한 흐름(신)의 통제를 받는 그래서 소외되지 않는 존재로 우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수도사처럼 경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외과의사는 전쟁터에 나타난 약왕보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 그리고 라마찬드란의 다음의 말은 우리를 "우리 모두가 외로운 존재야, 그래서 혼자 외로워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장 중에서 비록 덜 알려지긴 했지만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그가 모든 위대한 과학혁명에 공통적인 단일 분모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이들 모두는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퇴위시키고 모욕하는 것들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 첫 번째는 코페르니.. 더보기
존 브록만,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새로운 인문주의자들> 존 브록만이 편집한 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신랄한 전통 인문학 비판이 실려 있다. 이것마저도 벌써 20년 전의 주장이다. 이제는 정말로 죽어버린 전통 인문학. 당황하던 세기말의 그들과 나는 결국 같은 배를 탄 셈이었다. 몇 번은 살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 결국은 외부 담론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재탄생한다는 것은 요원한 길인가 보다. 새롭게 태어날 때는 아마 새로운 육신에 영혼이 담기리라. 존 브록만의 앞을 내다본 혜안에 존경을 표하며, 그의 뼈 때리는 비판을 담담히 음미한다. 제3의 문화가 이룩한 것은 걸핏하면 논쟁하려고만 드는 ‘대가’들의 소모적인 논쟁과는 사뭇 다르다. ... ‘인문주의[humanism]’라는 말은 15세기 무렵에는 하나의 지식 전체로 받아들여졌다. 피렌체의 귀족에게는 단테를 읽.. 더보기
위(謂)의 의미 謂는 言에 있어서의 胃이다. 쏟아져 들어온 말을 일정한 단위, 곧 소화 가능한 상태로 이해 가능한 상태로 컨버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곧 설명하자면"이라고 해석하면 아주 매끄러울 때가 많다.많이 쓰는 관용구로 소위 所謂는 보통 직역하여 "이른바"로 곧잘 쓰는데,"쉽게 말하자면"이라고 번역하면 훨씬 어감이 부드러워진다. 더보기
즉(卽/即)의 의미 卽은 "음식을 마주하여 앉아 있는 자세"를 상형한 글자로 전용하여 equal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한정 내지 정의의 용법으로 쓰는 be동사 쓰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불교 논서, 성리학서 등에서는 주로 "~에 즉해 있다" 또는 "곧 ~이다"로 쓴다. 가령 성즉리, 심즉리와 같은 명제.한차원 높이면 "~인 그대로 ~이다"라고 매끄럽게 쓸 수도 있다.그런데 오늘 드는 생각은 원래 상형의 뜻을 살려서 "~은 ~에 맞닿아 있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