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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 Line

과학의 종교성, <라마찬드란의 두뇌실험실 [Phantoms in the Brain]>에서

과학은 마치 종교처럼 인간의 존재를 재규정합니다. 어떤 거대한 흐름(신)의 통제를 받는 그래서 소외되지 않는 존재로 우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수도사처럼 경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외과의사는 전쟁터에 나타난 약왕보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 그리고 라마찬드란의 다음의 말은 우리를 "우리 모두가 외로운 존재야, 그래서 혼자 외로워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장 중에서 비록 덜 알려지긴 했지만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그가 모든 위대한 과학혁명에 공통적인 단일 분모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이들 모두는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퇴위시키고 모욕하는 것들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 첫 번째는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다. 여기서 우주의 지동설 혹은 지구 중심적 견해가 지구는 단지 광활한 우주의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대체된다.

두 번째는 다윈의 혁명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유태성숙의 왜소한 털 없는 원숭이일 뿐이며, 최소한 지금의 일시적 성공을 가능케 한 모종의 특성을 우연히 진화시킨 존재이다.

세 번째 위대한 과학혁명은 프로이트 자신에 대한 무의식의 발견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무엇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간적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은 무의식적인 감정, 욕구, 동기에 등에 의해 지배된다.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를 사후적으로 세련되게 정당화시켜주는 빙산의 일각과 같은 것이다.

나는 프로이트가 위대한 과학혁명의 공통분모를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왜 그것이 위대한 과학혁명의 공통분모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왜 인간은 모욕당하거나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즐기는가? 인간 종을 왜소하게 만드는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인간은 무엇을 얻는가?

여기서 방향을 틀어, 우주론, 진화, 두뇌과학이 왜 비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해보자.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주를 연구해 초시간적인 통찰을 갖게 되면서, 우리가 더 큰 무엇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변화하는 우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드라마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 자신의 개인적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게 된다. 아마도 여기가 과학자들이 가장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진화의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스스로를 위대한 여행의 일부로 파악하게 해준다. 두뇌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이 혁명을 통해 우리는 마음이나 육체와 구분되는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무섭기는커녕 우리를 매우 자유롭게 해준다. 스스로가 이 세계의 특별한 존재이고 특권적 위치에서 우주를 쳐다보는 고상한 존재라면, 우리의 소멸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구경꾼이 아니라 시바가 추는 거대한 우주적 춤의 일부라면, 우리의 불가피한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자연과의 행복한 재결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