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 Line

존 브록만,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새로운 인문주의자들>

Virgo_Spica 2020. 2. 19. 11:30

존 브록만이 편집한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신랄한 전통 인문학 비판이 실려 있다. 이것마저도 벌써 20년 전의 주장이다. 이제는 정말로 죽어버린 전통 인문학. 당황하던 세기말의 그들과 나는 결국 같은 배를 탄 셈이었다. 몇 번은 살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 결국은 외부 담론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재탄생한다는 것은 요원한 길인가 보다. 새롭게 태어날 때는 아마 새로운 육신에 영혼이 담기리라. 존 브록만의 앞을 내다본 혜안에 존경을 표하며, 그의 뼈 때리는 비판을 담담히 음미한다.

 

3의 문화가 이룩한 것은 걸핏하면 논쟁하려고만 드는 대가들의 소모적인 논쟁과는 사뭇 다르다. ...

인문주의[humanism]’라는 말은 15세기 무렵에는 하나의 지식 전체로 받아들여졌다. 피렌체의 귀족에게는 단테를 읽으면서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

위대한 과학적 진보를 가져온 20세기에 공식적인 문화는 문학과 예술과 더불어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는 통합된 지식 세계의 중심에 과학과 기술을 위치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과학과 기술을 냅다 걷어차서 내쫓아 버렸다. 전통적인 인문학자들은 과학과 기술을 조금은 전문적이고 특별한 산물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교양과목에서 과학을 쫓아내 버렸고, 이제는 학계의 주류가 되어 버린 수만은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과학을 말살시켰다. 덕분에 그들[전통적 인문학자]은 사회의 주류에서는 밀려나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

끊임없이 텍스트나 들락거릴 뿐 실제 세계와의 경험적 접촉이 전혀 없는 닫힌 세계가 우리 문화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시지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술평론가, 인류학자들이 추적해 낸 인간의 보편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회구성주의 계열의 문학평론가,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 완전히 무지한 유전자조작식품, 식품첨가물, 농약반대론자들. ...

체계적인 발전에 대한 기대 없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헐뜯고 재탕해 먹는 학문 분야와는 달리 과학에서의 선구자들은 더 많은 질문들, 더 진전된 질문들을 더 나은 방식으로 제기한다. 과학의 질문들은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제시되며, 과학은 그 답들을 찾아내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는 소모적이고 편협한 해석학을 계속하면서 문화적 비관론에 빠진 채 세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우울한 전망에 매달려 있다. ...

문화적 비관론의 핵심은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신화에 대한믿음이다. 즉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갖기 전에는 사람들이 생태학적으로 조화와 축복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정반대였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슈펭글러나 니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가장 큰 변화는 변화의 속도 자체라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강단의 인문학자들은 비관적인 세계관에 대한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헌신을 통해 끝없이 제자리 맴돌며 순화하는 주의들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